11년만에 뒤집힌 통상임금 판결... 추가 인건비 6.8조 전망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지급 조건은 무효”라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또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서도 “최소근무일수 조건은 무효”라며 역시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앞으로 정기상여금에 ‘상여금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만 지급된다’ ‘기준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 대해서만 상여금을 지급한다’와 같은 조건이 달려 있는 경우라도 모두 통상임금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재직자 조건이나 최소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상여금에 대해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석해왔다. 2013년 11월 대법원이 갑을오토텍 노조가 제기한 소송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의 일반적 기준으로 제시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날 대법원 결정으로 산업계는 대폭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특히 한화생명보험 노조가 제기한 소송의 쟁점인 재직자 지급 조건은 많은 기업이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화생명 측은 “법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무일수 기준에 따른 정기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는 현대차도 매년 수백억 원의 인건비를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종업원 급여에 투입하는 비용은 매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20년 연간 9000억원가량이던 종업원 급여비용은 지난해 1조 2000억원으로 늘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21년 5%에서 2022년 10.6%, 2023년에는 13.5%로 높아졌다.
단순히 개별 회사들 인건비가 오르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재계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정기상여금 비중이 높고 초과근로가 많은 대기업 근로자들이 임금 증가 혜택을 더 많이 받게 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법원이 불과 11년 만에 스스로 만든 법리를 변경했다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 현장의 법적 안정성이 훼손됨은 물론이고 노사 관계에서도 소송 남발을 비롯한 새로운 혼란이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앞으로 많은 기업이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추가 임금 지급을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기상여금을 나누어 일부는 기본급에 포함시키고 일부는 ‘고정성이 없는 성과급’에 포함시키는 방식의 대안이 거론된다.
새 기준으로 임금 계산하면
대법원은 지난 19일 판결로 통상임금 판단기준에서 고정성 요건을 폐기했습니다.
대법원은 “노동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은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가능성에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재직 조건부 임금이나 근로일수 조건부 임금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주휴일이 하루인 월급제 영업 사원 A씨가 매달 기본급 250만원과 월급 당일 재직해야만 지급되는 상여금 50만원, 한 달에 15일 이상 근무해야 지급되는 식대 20만원을 받는다면, 12월19일 전까지는 상여금과 식대는 고정성이 부정돼 월 통상임금이 기본급 250만원에 그쳤지만, 12월19일부터는 상여금과 식대까지 합쳐 월 통상임금이 320만원이 됩니다. A 씨가 한 시간 연장근로를 해 받을 수 있는 연장근로수당(월 통상임금÷209시간×1.5배)은 과거엔 1만7943원이었지만, 통상임금 확대 이후로는 2만2967원으로 오릅니다.
A 씨가 한 달에 상품 10개 이상 판매하면 성과수당 20만원을 받는다면, 이 역시 ‘조건부 임금’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이므로 ‘근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운수회사에서 일정 기간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무사고수당 역시 소정근로 제공 이외의 추가적인 자격요건 달성에 대한 보상이어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임금명세서·임금규정부터 확인
먼저 임금명세서를 통해 내가 받고 있는 임금의 구체적 항목을 확인하고,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단체협약을 통해 지급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수당이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되면서, 지급기준에 ‘재직 조건’이나 ‘근무일수 조건’이 붙어 있다면, 12월19일부터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합니다. 이에 따라 초과근로수당도 인상돼야 합니다.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고 있다면 고정 OT 수당도 올라야 정상입니다 . 올해 사용하지 못한 미사용 연차휴가수당도 새로운 기준에 따라 확정된 통상임금에 따라 지급돼야 할 것입니다 .
아쉽게도 새로운 통상임금 기준에 따라 과거에 덜 지급받은 임금을 새로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법원이 “12월18일까지 제공한 연장근로 등에 대한 법정수당은 종래 법리에 따른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하여야 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정성 요건’ 등을 이유로 소송을 이미 제기한 경우엔 새로운 기준에 따라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자료 참고
